《P에 대한 혐오》
○ 일시 : 2021. 01. 06 - 2021. 01. 19
○ 장소 : 을지로 OF (서울 중구 을지로 15길 5-6 5층)
《P에 대한 혐오》
○ 일시 : 2021. 01. 06 ~ 2021. 01. 19
○ 장소 : 을지로 OF (서울 중구 을지로 15길 5-6 5층)
○ 관람시간 : 13:00-20:00 (opening day : 15:00~21:00)
무료관람
○ 참여작가 :
교림, 김머쉬룸, 김제이, 박주영a, 임리하-박주영b, 진지원, 치명타
○ 주최/주관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현대미술학화 C.A.S.
조원영, 강혜지, 김서현, 김희근, 박효원, 유가영, 윤혜린, 이다윤, 이민영
○ 디자인 : 최하영 @yeonghachoi
○ 후원 : 홍익대학교 예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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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에 대한 혐오 : intro
P는 복수(plural)이자 개인(person), 또 그 외 여럿, 곧 익명이다.
보는 작품, 보는 이에 따라 이 빈 곳에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위치시킬 수 있다.
이렇게 제목에 익명을 넣는 방식은 20세기 초 사회적 혼란기에, 집단이면서 개인인 불특정 대상을 상징하기 위해 쓰였다.
이러한 형식에는 갈등과 우울의 뉘앙스 또한 스며 있다.
보는 작품, 보는 이에 따라 이 빈 곳에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위치시킬 수 있다.
이렇게 제목에 익명을 넣는 방식은 20세기 초 사회적 혼란기에, 집단이면서 개인인 불특정 대상을 상징하기 위해 쓰였다.
이러한 형식에는 갈등과 우울의 뉘앙스 또한 스며 있다.
혐오는 인간사 이래 지속하여 존재해왔다. 위협이 되는 것, 해로운 것을 피하려는 본능이 우리를 생존케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혐오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혐오’라는 키워드와 논제가 유례없이 뜨거운 감자인데, 소통이 부재한 상황에서 잠복해있던 혐오가 가시화되며 폭발하듯 논의와 의견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결부되어 더욱 빠르게 번졌고,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의 이질적 타자들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혐오라는 화두는 더 이상 우리의 사고에서 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전시는 혐오를 규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혐오는 그 자체로 강렬한 감정이기에 매몰되기 쉽다. ‘혐오’를 검색하면 이에 대한 정의보다 ‘어떠한 것’에 대한 혐오라는 키워드가 쏟아져나온다. 익명성이 없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목적어 없이 혐오에 대해 질문해도 답에는 자연스레 목적어가 등장한다. 이외에 간혹 있는 의견은 혐오를 퇴치하자는 것이다.
혐오는 생존을 담당했던 본능적인 감정이기에 이를 제거할 수는 없다. 본 전시에서는 혐오의 세상이 된 지금, 혐오 자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휩쓸리기 쉽고 강렬한 혐오의 바다에서 자신의 좌표를 지정해 보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등장할 혐오라는 감정과 이와 동반하는 사건들 속에서 지표가 될 것이다.
본 전시는 감각, 타자, 사회, 개인이라는 네 주제로 구성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초기에 혐오는 오염과 질병을 피하기 위한 생존적 감각에서 시작되는데, 이가 본능에 따른 감각적 혐오다. 이 원초적 감각은 또 다른 위협인 외부의 타자로부터 자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욕망과 더러움의 투사, 경계짓기를 통해 타자에게 전이된다. 전이된 혐오는 자연스럽게 비슷한 속성을 지닌 공동체로 스며들어, 사회 내외적으로 공유되면서 다양한 양태로 확장한다. 사회적으로 만연해진 혐오는 결국 그 안에 속한 개인에게 되돌아온다. 일방향으로 시작했으나 순환적인 방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전시에서는 이러한 혐오의 양상을 비추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혐오는 생존을 담당했던 본능적인 감정이기에 이를 제거할 수는 없다. 본 전시에서는 혐오의 세상이 된 지금, 혐오 자체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휩쓸리기 쉽고 강렬한 혐오의 바다에서 자신의 좌표를 지정해 보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등장할 혐오라는 감정과 이와 동반하는 사건들 속에서 지표가 될 것이다.
본 전시는 감각, 타자, 사회, 개인이라는 네 주제로 구성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초기에 혐오는 오염과 질병을 피하기 위한 생존적 감각에서 시작되는데, 이가 본능에 따른 감각적 혐오다. 이 원초적 감각은 또 다른 위협인 외부의 타자로부터 자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욕망과 더러움의 투사, 경계짓기를 통해 타자에게 전이된다. 전이된 혐오는 자연스럽게 비슷한 속성을 지닌 공동체로 스며들어, 사회 내외적으로 공유되면서 다양한 양태로 확장한다. 사회적으로 만연해진 혐오는 결국 그 안에 속한 개인에게 되돌아온다. 일방향으로 시작했으나 순환적인 방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전시에서는 이러한 혐오의 양상을 비추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치명타는 사회의 모순들과 의문점을 주시하며, 관객들에게 사회적인 시사점을 건네는 작업을 한다. 본 전시에 출품한 <메이크업 대쉬 Make up Dash>와 <실바니안 패밀리즘 Sylvanian Familism>은 영상 매체로써, 관람객들이 익숙한 유튜브의 방식과 연극의 방식을 차용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기서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아닌 타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때의 타자란 주류 혹은 권력층의 반대에 있는 인물들로, 미지의 대상으로서 소외되고 대상화되며, 배척받아야 할 존재들로 ‘혐오’당한다. <메이크업 대쉬>에서는 화장으로써 자신을 치장하는 여성이, <실바니안 패밀리즘 에피소드 3, 4>에서는 난민과 성 소수자가 등장한다. 치명타의 작업을 보면, 주류사회가 자신의 정체성 확보와 불안감 해소, 더 나아가 복합적으로 금지된 욕망의 해소를 위해 이들을 ‘그들’로서, 어떠한 대상으로써 이미지를 만들고 차별화하는 사회에서의 혐오를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논리의 모순지점을 발견하여 꼬집고 전복하며, 타자/소수자와 연대하면서, 직접적인 방식의 언어와 영상으로 강력한 메시지를 발화함로서 ‘치명타’를 날린다.
<Make up Dash> (2017)
‘아름다움의 신화’, 여성에 대한 억압적 미의 기준은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태동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근래의 현상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맞물려 사뭇 독특하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기술의 발달로 활성화되고, 구체적이고 확실한 이미지와 언어를 세계 끝에서 끝으로 빠르게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미적 기준을 세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된 것 때문이다. 특히 유튜브를 위시한 소셜미디어는 미적 기준 재생산의 선봉에 서 있으며, 치명타는 한국에서 뷰티 유튜브가 가장 활성화되었던 2017년, 뷰티 플랫폼의 언어로 전파되던 ‘여성적 이미지’를 소재로 다룬다.
<서른부터 일흔>은 서른을 맞이한 작가의 친구들과 사회의, 여성의 서른에 대한 편견적 시선–여성은 아름답고 젊어야 하기에 서른부터는 가치가 없다는–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작가는 본인의 모습을 메이크업 도구로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대신 나이가 들어 보이게 연출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5개의 메이크업 룩은 각각 서른부터 일흔까지 작가의 상상적 모습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미디어가 주입하고 재생산하는 ‘나이 들어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가 아닌 본인이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자신의 노화 과정을 연출하며, 유튜브 환경에서 나이 듦에 대한 이미지를 스스로 생산한다.
한편 당시 작가의 작업 공간이었던 문래동에서, 작가는 철공소 등에서 일하는 소위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흔히 남성인 것을 발견한다. 이 지점에서 출발한 <문래동 메이크업>은, 유튜브에서 빠르게 떠오르고 재생산되는 트렌디한 메이크업이 아닌 푸르고, 붉고, 강한 ‘철공소적’인 메이크업이다, 작가는 작품에서 뷰티 유튜버들의 메이크업 문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나, 그 내용을 젠더 이슈와 주체적 행위, 자신의 경험과 주관으로 채운다. 이로써 치명타의 메이크업 유튜브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재현하는 자기 소외적 성격의 영상이 아닌, 언어, 태도, 외관의 영역까지 억압적 기제를 전복시키는 주체적인 수단으로서의 영상이 된다. 마지막 멘트로 “좋아요와 구독 눌러주세요.”가 아닌, “좋아요와 구독은 안 눌러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유튜버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작가니까요.”는 이를 다시금 시사하고 있다.
<Sylvanian Familism> (2019)
<실바니안 패밀리즘>은 1950년대 영국 교외에 사는 중산층 가족의 생활을 컨셉으로 한, ’실바니안 패밀리‘라는 유명 동물 피규어 시리즈로 제작한 작가의 인형극이다. 2019년에 제작된 본편 5편과 2020년의 후속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 전시에서는 전시 주제에 연결되는 본편의 3편과 4편이 상영된다. 3편과 4편에서 작가는 ‘정상적인’ 가정을 재현하는 실바니안 패밀리 인형을 이용하여 난민,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모순을 지적한다. 이 극에서 인형들은 작가에 의해 중성적인 의상을 입고 탈젠더적 성격을 부여받으며, 소수적 공동체와 그들의 연대를 재현하게 된다.
3편인 <진짜 가짜 진실 거짓>에서는 시사 토크쇼의 방식을 빌려, 난민 문제에 대해 논한다. 잘못된 정보를 재생산하는 MC ‘흰 토끼’를 화자로 한 방송국,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고 오류를 지적하는 게스트 ‘아기 수달’의 대립적인 대화가 이어지는데, 이때 난민들은 흔히 그렇듯 이질적 존재로서 ‘범죄의 원인’, ‘유가 상승의 원인’ 등 부정적 사회효과의 원인으로 매도된다. 난민은 같은 인간적 존재가 아닌, 미개하고 뒤떨어진 문제적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편견 속에서 잘못된 정보들이 재생산되는데, 작가의 화자로서 대변되는 아기 수달이 이에 대해 반박하고 방송국의 오류를 정면에서 짚어낸다.
이어지는 4편인 <레인보우 썸머>는 실바니안 사회의 ‘좀비 참사’에서 생존한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한다. 이들은 좀비 참사라는 특수한 아포칼립스적 세계에서, 성 소수자들이 평소에도 쉽게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더욱 크게 마주하게 된다. 성소수자 가족공동체의 부정, 사회적 편견 등….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은 편견 가득한 실바니안 패밀리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풀버전 : https://youtu.be/LpKyoA10Kz0)
치명타 작가는 이렇게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분명하게 지시하여 비판하고 있지만, 작가는 이 과정에서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 <메이크업 대쉬>에서는 불평등과 편견에 대해 다루지만 여기엔 농담과 유머가 곁들여져 있고, <실바니안 패밀리즘> 또한 현실의 소수자들의 어려움을 극으로 풀어내고 있으나 인형의 슬로건인 “가족, 자연, 사랑”의 기치를 여전히 들고 있는 비극이 아닌 희극이다. 이러한 작업은 긍정적인 비전으로 끊임없이 행동하고 움직이며, 소수자와 연대하려는 작가의 신념 때문으로 보인다. 작가가 작품에서 발화하는 언어는 직접적이지만, 공격적이지 않다. 치명타는 이러한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태도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꾸준히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조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