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the Paper 종이 아래
종이 아래(2022) 프로젝트는 평등하지 못한 사회가 ‘코로나19’라는 재난을 만나 무너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명하는 회화 시리즈다. 특히, 추모와 연대 없이 기술과 정치로 팬데믹에 맞선 공동체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종이’에서 출발하여, 종이가 갖는 물성 그 자체의 단순함을 넘어 종이 서류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치환되는 사회적 현상과 한 장의 서류가 있어야만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소수자의 현실을 짚어낸다. 그리고 회복과 치유의 슬로건 아래 망각된 존재들을 소환하여 이들이 처한 문제를 가시화한다. 이로써 재난을 기점으로 더욱 붕괴된 공동체성을 재건하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Under the Paper (2022) project is a series of paintings that highlights the problems that occur during the collapse of the unequal society upon the calamity of COVID-19. The project examines, in particular, the most urgent challenge to resolve for the community that faced the pandemic without tribute or solidary, but with technology and politics instead. The artist begins from the ‘canvas’ that the painters use to draw and goes beyond to the materiality of the paper and to the social phenomenon where a piece of paper signifies everything, and points out the reality of the marginalized who must have a piece of document to prove their existence. Then the artist summons the forgotten existences under the slogan of recovery and healing and visualizes the problems from which they suffer. As such, the artist questions the value to be reminded to reconstruct the further collapsed
community-ness that the pandemic brought.
community-ness that the pandemic brought.
작가노트
- 이제 거리 두기 정책이 많이 완화되어 야외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전 세계가 여전히 ‘코로나19’와 대치중이지만, 분위기만큼은 희망에 젖어있다. 나 역시 종종 마스크를 벗고 햇빛 아래를 누비며 가지 못하는 해외여행을 상상하곤 한다. 불과 작년, <재난도감(2021)>을 작업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다.
<재난도감(2021)>은 본 작업의 베타 버전으로, 평등하지 못한 사회가 ‘코로나19’라는 재난을 만나 무너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소외된 이들의 자취를 기록한 드로잉 시리즈다. 당시 온 미디어가 방역을 핑계로 확진자 동선을 읊었고, 사람이 아닌 숫자로 희생자를 기억했다. 나아가 추모와 연대 없이 기술과 정치로 재난을 통과하려 했다. 나는 이것이 팬데믹 이후의 사회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이라고 생각했고, 작업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지금의 나는 재난과 관련된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재난도감(2021)>은 본 작업의 베타 버전으로, 평등하지 못한 사회가 ‘코로나19’라는 재난을 만나 무너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소외된 이들의 자취를 기록한 드로잉 시리즈다. 당시 온 미디어가 방역을 핑계로 확진자 동선을 읊었고, 사람이 아닌 숫자로 희생자를 기억했다. 나아가 추모와 연대 없이 기술과 정치로 재난을 통과하려 했다. 나는 이것이 팬데믹 이후의 사회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이라고 생각했고, 작업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지금의 나는 재난과 관련된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 전시 제목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주제곡 중 하나인 ‘Under the Sea’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이 곡은 인간 세상에 가려는 에리얼에게, 그곳은 위험하다며 가지 말고 바다에 남아달라 애원하는 세바스찬의 노래다. 새로운 삶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모험을 강행하려는 에리얼에게 안정된 삶을 버리지 말라고, 여전히 아름다운 바닷속 세상에서 공주로서 영원히 함께 하자고 세바스찬은 이야기한다. 난 공주는 아니지만, 내 안의 세바스찬이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건다. 분노와 무기력을 유발하는 사회의 민낯을 마주해야만 그릴 수 있는 그림 말고 다른 것을 그려보라고. 즐겁고 기쁜 것, 편안하고 안정된 것에 집중하라고. 백신 부작용으로 몹시 아팠던 학생이 제대로 된 대응책이 없어 속절없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날엔, 온 세상이 물거품 엔딩을 맞이한 것 같았다. 이깟 그림이 이 상황에서 도대체 뭘 할 수 있는지 원망스러웠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2020년 ‘코로나 1호 정리해고’ 아시아나 케이오 소식을 접할 때도 그랬다. 하지만 운 좋게도, 재난의 반복과 고통의 확산에도 굴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하고야 마는 이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내 그림을 보고 선뜻 나눠준 생각, 경험, 이야기가 소중했던 순간이 분명 있었다. 염치없지만, 이번 작업은 그 단단함에 기대어 완성할 수 있었다. 종이 너머 실존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버팀목이 돼주었다.
- <Under the Paper>는 직역하면 ‘종이 아래’를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종이’는 물성 그 자체의 단순함을 넘어, 한 장의 서류가 있어야만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소수자의 현실, 종이 서류 한 장으로 모든 것이 치환되는 사회적 현상을 이야기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음성 확인 서류를 떼어와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홈리스와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건강보험증까지 내밀어야 하는 이주민의 문제, 요양 병원 문 앞에 붙은 공문만 바라볼 뿐 가족을 보지 못한 채 뒤돌아서야 하는 이들의 현실이 그것이다. 나아가 본 프로젝트가 미처 다 소화하지 못했으나 존재하는 수많은 재난 일상을 함께 떠올려달라는 요청이기도 하다. 종이 아래, 전시장 너머 사회 시스템이 방치한 이들의 그림자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다음 재난을 맞이할 때 또다시 이들이 필연적으로 가장 먼저 스러질 수밖에 없다. 본 작업은 재난이 반복되는 사회 구조를 고찰하여 문제의식으로 다루고, 재난을 통해 한국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불평등과 소수자에게 폭력적인 시스템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치명타
△ 2022. 8. 4 - 8. 21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2년도 청년예술가 생애첫지원, 탈영역우정국 협력 전시 〈Under the Paper 종이 아래〉, 탈영역우정국,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