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 과거완료’ 너머의 세계
치명타의 <고슴도치와 투지의 시간여행자>(2020) 리뷰
오혜진(문화연구자)

Copang Logistics Center, Mixed media, Variable size, 2020 ⓒ사진 정택용

  완구 프랜차이즈 ‘실바니안 패밀리Sylvanian Family’를 이용해 제작된 15분 남짓 분량의 영상물 <고슴도치와 투지의 시간여행자>(2020)를 읽어내는 일은 즐겁지만 간단치만은 않다. 실바니안 패밀리는 1950년대 한적한 교외 숲속에 거주하는 영국 백인 중산층 가족을 모델로 1985년에 일본 완구회사 ‘에폭’에서 출시한 동물인형 세트다. 이 완구가 연령과 성별, 국적과 언어와 문화를 막론하고 아시아·북미·유럽에서 수많은 소비자들을 매혹해왔음은 당장 구글에서 ‘실바니안 패밀리’를 검색하면 쏟아지는 열광적인 호응을 통해 쉽게 확인된다.
  무엇보다, 실바니안 패밀리 시리즈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수집’ 대상으로서 어필한다. 실바니안 패밀리의 각종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형들과 정교한 소품들을 구매해 실바니안 패밀리가 제시하는 모든 상황과 삽화를 재현하는 것은 충실한 ‘실바니안 덕후’들이 응당 품음직한 욕망이다. 그렇게 ‘실바니안’은 단지 장난감일 뿐 아니라, 열정적인 ‘수집’의 대상이자,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구현·완성해야 할 ‘세계관’이 되었다. 
  모든 성공적인 서사가 그렇듯, 실바니안 패밀리도 수많은 2차 창작물들을 양산한다. 실바니안의 서사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거듭 만들어졌고, 일본에서는 실바니안을 모티프로 한 놀이공원도 개장했다. 유튜브에는 실바니안 패밀리의 인형들을 활용해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창작한 영상물들이 차고 넘친다. 다만, 이제 소비자들은 실바니안 패밀리의 마스터플롯을 재연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제 ‘원작’의 기본 설정과 서사를 해체하고, 재조립하고, 전유하고, 전복하는 적극적인 연행자performer가 된다.  
  이 모든 일을 그저 영리한 상품 판매전략에 사로잡힌 자본주의적 실천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사태는 간단할 것이다. 하지만 ‘창작/능동/주체 대vs 소비/수동/대상’과 같은 이분법적 구도가 상품을 매개로 한 역동성과 주체화의 기획을 설명하는 데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은 이미 많은 연구들이 증명한다. 그렇다면 매체의 전복을 통한 정치화의 가능성을 꾸준히 실험해온 미술작가 치명타가 탄생시킨 실바니안 세계는 어떨까. 
  치명타는 <여의도-로잉>(2016~2019) 작업을 통해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농성현장을 기록하되, 긴박한 갈등상황을 빠르고 극적으로 포착하기 위해 주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활용해온 현장예술가들과는 좀 다른 선택을 한 바 있다. 구겨진 운동화나 일회용 컵, 농성자들의 실없는 듯 뼈 있는 농담 등을 그리는 그에게는 종이 몇 장과 간단한 수채화 도구야말로 투쟁현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매체였다. 사진과 달리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수 있”는 수채화는 모두가 필사적인 현장에서 ‘저항’과 ‘연대’라는 단어의 무게에 압도되지 않은 채 농성자들의 ‘현장’을 이해하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었다.
  ‘현장(성)’에 대한 그의 각별한 관심은 그의 2017년 프로젝트 <Makeup Dash>에서도 매우 인상적인 방식으로 이어진다. 유튜브의 ‘뷰티 콘텐츠’라는 가장 젠더화된 장르의 문법을 따르고, 그에 편승하다가 이내 그것을 낙후시키는
 이 놀라운 영상물들은 젠더에 대한 전통적·사회적 각본은 물론, ‘미술’과 ‘현장’에 대한 규범적 인식 또한 뒤흔들고 갱신한다.   
  그리하여 치명타가 새롭게 탄생시킨 실바니안 또한 실바니안 패밀리의 의도대로 그저 안온하고 귀엽지만은 않으며, 오히려 수상쩍고 의뭉스럽다. 소비자/연행자의 서사적 개입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실바니안 패밀리 ‘동물-인형-놀이’가 인천의 한 작은 독립영화 상영관에서 혹은 불특정 다수가 언제든 무상으로 접속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인 유튜브에서 재생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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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보리 토끼 가족, 솜 토끼 가족, 줄무늬 고양이 가족, 밀크 토끼 가족, 양 가족, 초콜릿 토끼 가족, 호두 다람쥐 가족, 실크 고양이 가족, 토이 푸들 가족, 고슴도치 가족……. ‘실바니안’의 동물들은 모두 가족을 이루어 산다. 엄마는 요리하고 아빠는 출근하며 아이들은 공부하는, 전형적인 ‘정상가족’의 구도다. 명백하게 가족우화의 성격을 띤 실바니안의 서사는 마치 디즈니가 그랬던 것처럼, 동물의 인격화를 통해 소비자본주의 사회가 동물을 가족 관련 상품으로 전환시킨 단적인 사례다. 이는 미학자 김영옥이 적확하게 지적한 대로, “복잡하게 얽힌 정신적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이 추구하는 어떤 원형적 ‘천진함’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고 그로써 인간과 동물, 두 종 모두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치명타는 우선, 실바니안이 재현하는 가족주의를 심문에 부친다. 작가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따라 설정된 동물들의 옷을 벗겨내고, 작가가 부여한 캐릭터의 ‘특이성singularity’에 따라 새로 제작한 옷을 착장시킨다. 규범적인 복장으로부터의 탈피가 가능하게 하는 것은 ‘패밀리’의 해체와 ‘개인’의 등장이다. 이런 전유와 재조립을 통해 작가는 서로 다른 종에 속한 동물들로 이뤄진 비혈연가족과 임시적·우발적으로 형성되는 다양한 관계들을 선보인다. 이들 중 몇몇은 휠체어나 목발 같은 인공적인 보철물과 연결된 신체를 가졌고, 또 누군가는 (한국 관객이 공유하는 특정 사건/역사를 능히 암시하는) ‘노란 팔찌’를 상시 착용하고 있다. 실바니안의 동물들이 모이는 쉼터 혹은 카페에는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들을 지시하는 책과 포스터, 구호들이 빼곡하게 배치된다. 치명타가 탄생시킨 새로운 실바니안에서는 서로 이질적인 다양한 신체들이 가족으로, 연인으로, 이웃으로, 타자로 존재한다. 이제 실바니안은 가상의 배경을 무대로 펼쳐지는 무국적의 숲속마을이 아니라, 특정 공동체의 역사를 환기시키는 그럴듯한 기호이자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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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타의 <실바니안 패밀리즘>은 2019년 9월 28일부터 29일까지 인천의 한 작은 독립영화관인 ‘영화공간 주안’에서 처음 공개됐고, 2020년 1월 24일부터 2021년 1월 현재까지 유튜브에서 재생되고 있다. 총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상은 정상가족을 단위로 한 사회에서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거나 시민권이 기각된 소수자의 존재를 조명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 ‘피의 대화’에서 실바니안의 동물들은 생리대수거함 안에서 만난 HIV/AIDS 여성감염인의 핏방울로 분하는가 하면, 두 번째 에피소드 ‘내 맘대로 먹을 수 있는 수요일’에서는 장애와 탈시설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도전하고 행동하는 “불구의 정치”를 선보인다. 세 번째 에피소드 ‘진짜 가짜 진실 거짓’은 토크쇼의 형태를 빌려, 난민에 대한 대중의 공포와 혐오를 양산하는 ‘가짜 뉴스’의 문제를 언급하고, 네 번째 에피소드 ‘레인보우 썸머’에서는 ‘법적으로 공인되지 않은 관계’라는 이유로 ‘좀비 참사’라는 재난상황에서 생존자 대피소에 입소하지 못하는 동성커플의 이야기를 다룬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허들링’에서는 마치 황제펭귄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혹한을 견디듯, 재난피해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회복’을 격려하는 공동체가 제안된다.
  요컨대, 작가는 언제나 매끄럽고 안전하게 사회화 과정을 습득하던 실바니안의 귀여운 동물들을 피칠갑된 생리대로부터 걸어 나오게 했고, 휠체어 위에 앉혔으며, 지정된 성별이 아닌 ‘자신의’ 성별을 탐색하도록 만들었다. 누군가에는 분명 살풍경일 이 낯선 세계는 인형극 혹은 동화 구연의 컨벤션에 힘입어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제시된다. 물론, 모든 차별과 혐오의 시도가 통렬하게 반박되고 무력화되는 이 이상적인 ‘실바니안’은 원작과는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목가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실바니안 패밀리즘>의 서사와 이미지들이 꽤 성실하게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세목들을 점검하고 대안적 세계의 명료한 조건들을 전한다면, 이 작품의 스핀 오프 격으로서 2020년 11월 15일부터 12월 30일까지 유튜브 채널에 한시적으로 공개된 <고슴도치와 투지의 시간여행자>의 기호체계와 의미망은 한층 복잡하다. 
첫 장면에서 카메라는 과거로 가는 타임캡슐을 개발 중인 ‘비버’의 방을 샅샅이 보여준다. 책꽂이에는 2015년 이후 출시된 페미니즘, 동물권, 난민 담론에 관한 책들이 꽂혀 있고, 한쪽 벽에는 2014년 9월 28일에 일어난 ‘좀비 참사’를 기억하며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매년 개최된 행사들의 포스터가 연이어 붙어 있다. 선반에는 비버와 밀접한 관계이자 ‘좀비 참사’로 인한 사망자로 추정되는 ‘고양이’의 사진이 끼워진 액자가 놓여 있다. 
비버는 벌써 몇 년째 과거의 ‘그날’로 가기 위한 타임캡슐을 만들고 있지만 거듭 실패한다. 심지어 통장 잔액조차 남아 있지 않아, 비버는 개발비용을 벌기 위해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물색한다. 비버의 반려종 AI인 ‘시바리’는 일이 너무 고되서 “코피 팡팡” 난다는 택배물류업체 ‘코팡 플렉스’에서 일할 것을 권한다. 택배공장에 도착한 비버가 목도하는 것은 “오늘 안에 153건”을 배달해야 한다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노동자들이다. 이때 관리자를 찾던 비버는 한쪽 팔에 노란 팔찌를 찬, TV에서 ‘타임캡슐 개발자’로 소개된 비버를 봤다며 친한 척하는 정체불명의 고슴도치를 만난다. 과거로 가는 타임캡슐을 개발 중인 비버에게 “미래로 가고 싶죠?”라고 물으며 “구리구리한” 냄새가 나는 수상한 부품을 강제로 건네는 고슴도치.  
  고슴도치에게 받은 부품으로 타임캡슐 개발에 성공한 비버는 고양이를 만나기 위해 좀비참사가 있던 ‘2014년’으로 희망시각을 설정한다. 하지만 희망시각은 제멋대로 ‘2021년’으로 변경되고, 미래에 도착한 비버는 시바리와 함께 평화로운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이어, 미래의 비버는 휠체어에 앉은 강아지, 노란 모자를 쓴 곰, 그리고 다람쥐와 함께 식사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다정하게 경청하는 동물들.
  ‘현재’로 돌아온 비버는 무언가 깨달은 듯, 택배공장으로 가 고슴도치를 찾는다. 고슴도치는 “적정물량을 배정하면” 과로하지 않아도 된다고 동료를 설득하며 유인물을 건네고 있다. 비버는 고슴도치에게 “내가 왜 당신을 못 알아봤을까요?”라고 물으며, ‘타임캡슐은 애초에 과거로는 갈 수 없었다’고 말한다. 엔딩 크레딧이 끝난 후 이어지는 쿠키 영상. 2007년에 과거로 이동하는 타임캡슐을 개발 중인 고슴도치는 2006년에 2015년으로 이동한 시바리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미래에 우리는 일하고 있니?’라고 물으며. 
  이쯤 되면, 2000년대 한국의 노동사와 재난사를 적극 참조해 이 작품의 타임라인을 재구성해보라는 이 작품의 부드러운 요청을 물리치기 어렵다. 비정규직 노동자 고슴도치가 시바리를 만나고자 향하는 2007년 이전의 시간을 통기타 제조업체 콜텍이 ‘경영상의 이유’로 전체 노동자의 1/3을 자르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한 해와 겹쳐보는 일, 재난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비버가 재난으로 인해 사망한 고양이를 만나고자 향하는 2014년을 ‘세월호’라는 큰 배가 기울 때 구조의 의무를 방기하고 재난피해자 추모를 탄압한 국가의 시간과 나란히 놓아보는 일.
  그러나 비버와 고슴도치가 결국 과거로 갈 수 없었듯, <고슴도치와 투지의 시간여행자>는 타임슬립, 즉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법 과거완료의 형식을 통한 소망 성취를 재현하는 데 관심 두지 않는다. 사건/참사의 시간을 함께 살아내며 공유하게 된 친구·동료·연대자들과의 시간까지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리라. 무엇보다, 고슴도치와 비버가 “투지”로써 획득하고자 하는 시간은 단지 해고노동자가 되지 않고, 산업재해를 당하지 않고, 재난을 겪지 않는 예외적인 시간은 아닌 것 같다. 도래해야 할 세계는 특정 개인이 요행으로 불운을 피하는 세계가 아니라, ‘취약’한 존재여도 괜찮은 세계, ‘취약’한 존재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공유하는 세계다.
  마지막으로, 동물인형들이 ‘움직이도록’ 고요하고도 성실하게 노동한 ‘손’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연행자의 노출된 손은 새로운 실바니안이 ‘자연’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동의 산물임을 거듭 곱씹게 한다. 이는 물론 ‘작가의 구체적인 노동에 힘입어 소수자 정치를 실현하는’ 치명타의 ‘실바니안’을 넷플릭스 같은 ‘자본의 이야기가 만든 환상’과 구분
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장치다. 이와 더불어 나는 이 ‘보이는 손’으로부터, 자신이 선택한 매체와 방법론으로써 ‘아직 오지 않은 세계’를 자신의 ‘현現-장場’으로 발명하고야 말겠다는 한 예술가의 용감한 끈기와 자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혜진
⑴ 치명타·오혜진, 「[‘여성-창작’을 말하다⑧] “‘좋아요’는 안 누르셔도 됩니다. 전 미술작가니까요.”」, 「여성신문」, 2018. 12. 4.
⑵ 정은영, 「지금 여기 ‘현장/광장’의 미술─<Makeup Dash> 전시비평」, 2018. 6. 7. 치명타 블로그 https://blog.naver.com/cmt0000/221293731424 
⑶ 김영옥, 「이미지 페미니즘─젠더정치학으로 읽는 시각예술」, 미디어일다, 2018, 162쪽.
⑷ 장애여성공감 설립 20주년 기념 선언문에서 ‘불구의 정치’는 “민주주의와 보편의 정의를 다시 묻고, 제도와 보편에서 누락된” 존재로서 “소수자들과 함께, 정상성과 보편을 의심하고 싸우는 이들과 함께 의존과 연대의 의미를 다시 쓰는 투쟁”을 의미한다. 장애여성공감 설립 20주년 기념 선언문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 2018. 2. 2.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 https://wde.or.kr/20%EC%A3%BC%EB%85%84-%EC%84%A0%EC%96%B8%EB%AC%B8/
⑸ 작가는 2020년의 작업계획을 서술하면서 이 작품을 “타임머신을 개발하여 재난 발생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주인공 비버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며 불과 두 달 전 안전사고로 동료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고슴도치가 만나 벌어지는 사건을 줄거리로” 하며, “이를 통해서 재난 이후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피해자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공동체적 논의는 무엇일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치명타, 「<실바니안 패밀리즘>에 관하여」, <동무비평 삼사>, 2020. 12. 20. https://review34.kr/32
⑹ 채희숙, 「치명타의 <실바니안 패밀리즘>─소수자 정치를 불러 모으는 꼭두극」, 2019. 12. 30. 치명타 블로그 https://blog.naver.com/cmt0000/22175443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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