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농담 사이
전진경(작가)

  몇 년 전 우연히 내가 먼저 모르는 그녀에게 sns를 통해 친구신청을 했다. 정말 우연이었다. 치명타에게서 답신이 왔고 얼마 후 나를 찾아왔다. 알다시피 이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종류의 일이다. 당시 나는 부평 콜트공장에서 빈 공장을 점거하고 있었고 마당에서 일상을 보내는 해고 노동자들과 그럭저럭 좋은 시간을 보내며 예술을 하고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치명타와 이야기를 나눴다. 치명타는 넉살좋게도 콜트콜텍 아저씨들의 저녁밥상에 끼어 저녁을 먹고 돌아갔다. 나는 치명타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가지게 되었다. 매우 의욕적인 사람이구나. 현장예술에 대한 어떤 이상한 환타지를 가지고 있나보다. 이러다 말겠지.
이듬해, 그리고 또 이듬해 치명타는 계속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을 찾아왔다. 되려 나는 그 시간 농성장을 가끔 찾아가는 손님이 되고 있었고 치명타는 지속적으로 농성장에 찾아와 놀다 가는 식구가 되어 있었다. 치명타는 정말 의욕적이다.
작년부터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은 여의도로 농성장을 옮겼다. 손님 역할이 불편한 나는 <드로잉 데이> 라는 것을 만들어 매주 목요일에 농성장에서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이왕 이면’ 이라는 생각에 sns에 광고를 내고 농성장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포스팅에 ‘좋아요’는 많았으나 직접적인 답신은 없었고 ‘아마도 혼자 하게 되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의 그 의욕적인 치명타는 스케치북을 들고 나타났다. 
그 다음 주에도 나타났고 그 다음주, 다음주,,,,, 치명타는 계속 스케치북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그림을 그리다가도 슬며시 치명타를 관찰했다. 2,3개월은 해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틈에서 홀로 집중해 그림을 그린다는 건 실상은 그리 쉽지 않다. 일종의 내공이 필요한 작업시간이다. 쉽게 피로해 지기도 하고, 그 피로감에 슬슬 재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부터는 발길이 끊긴다.
그러나 〈우리가 같이 아는〉 치명타는 정말 의욕적인 사람이어서 항상 목요일마다 나타났다. 치명타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면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하였는데, 항상 나와 아저씨들은 치명타가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농성장 안은 나름 화기애애하고 수다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 농성천막 안에서 오렌지를 까먹으며 각자의 과거시절을 생각나는 대로 떠들고 있었는데 치명타가 깔깔 웃으며 우리의 말들을 스케치북에 드로잉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치명타는. 아저씨들의 웃자고 하는 농담을, 한숨 같은 하소연을, 농담 섞인 핀잔을, 부끄럽게 드러낸 자존심을, 쓸쓸하고 고집스러운 침묵을, 그 흩어지는 말들을 종이에 그렸다. 치명타가 한권의 스케치북을 채웠을 때, 나는 진심과 농담 사이의 기록들을 보았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다른 이에게도 소중해 진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치명타가 나에게 20대를 어떻게 보냈냐고 물었다. 작가로 살기 위해 어떤 노력과 선택을 했는가 하는 질문이다. 잠시 생각해봤는데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단지 지금 치명타를 바라보며 감지하는 것은 20대의 그녀가 수많은 좌절과 불안속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해지고 싶어서 애써 담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치명타의 노력들을 응원한다. 의욕적이고도 의지적인 치명타다. /전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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